사라져가는 익명의 세계
최근에 페이스북에서 나의 프로필을 제한했다.
로그인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게 됐을 때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이 문장도 함께 찾아들었다. '도대체 갑자기 왜?'
사실 나는 두 개의 페이스북 계정이 있었다. 그리고 그 체제를 유지한 지 10년 가까이 되어간다. 그렇다고 겁나 많은 친구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한 계정은 300명 정도 되고 다른 계정은 100명이 될까 말까 한 정도다. 계정을 두 개 만든 건 목적이 달라서였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기 좋아하는 나의 친목도모용, 공적으로 일한 것들(열심히 작성한 블로그 포스팅, 업로드한 유튜브 에피소드, 공들여 쓴 기사의 링크 등을 공유하는 일)을 기록하고 공유하기 위한 아카이브용.
처음에는 전자 쪽 사용량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일상의 시시콜콜한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해두고 다른 친구들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점점 후자의 사용량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사교의 장'으로서의 페이스북은 나이를 먹게 되면서 친구은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고 바쁜 직장생활을 하느라 일상을 공유하거나 잡생각을 나누는 일이 줄어들었다. 혹은 육아 앨범이자 아이들 성장기록일기가 되거나......나 또한 삶이 팍팍해지면서 공적인 이야기를 더 많이 하게 되지 사적인 한담은 늘어놓지 않게 됐다. 각종 웹사이트나 어플리케이션에서 가입하는 수단으로 페이스북을 제안하면 일일이 수많은 정보를 새롭게 만드는 대신 그걸로 내 정체를 대신하게 됐다. 그것도 사적인 정보가 가득한 계정 말고 공적인 것들을 주로 채워왔던 계정으로.
페이스북은 끊임없이 나에게 전화번호를 입력해서 인증을 받으라고 요구했지만 처음부터 '진짜의 나'가 아닌 '가상의 나'를 그곳에 만든다고 생각해왔기에 끝까지 거절했다. 언제고 삭제해도 괜찮은 것만 올리기로 했고 처음 몇 년은 그렇게 유지가 잘 되어가는 듯했다.
그런데 말이다......
10년도 훨씬 넘게 이런저런 잡스러운 나의 인생을 공유하다 보니 그곳에서 '진짜' 인간관계가 형성/유지되기도 하고 물리적인 굉장한 노력 없이도 그것이 지속되더라는 거다. 보이고 싶은 나만 업로드하는 게 아니라 진짜 마음이 아파 위로가 필요할 때 손을 내밀기도 하고 인생에 말도 안 되게 바보 같은 실수를 했을 때도 공유하며 나는 이랬지만 당신은 그러지 말라고 말하기도 하고....결국 진짜 나의 모습도 그곳에 담기게 됐다. 페이스북 계정으로 가입한 사이트에 내 이름을 걸고 글을 쓰고 내 이름과 개인 정보가 담긴 이력서를 올리고 이벤트에 응모하고 물건을 구매해서 배달 받고.......
어떻게 보면 완벽하게 익명(페이스북에 올라간 내 이름조차 두 계정 다 내 본명이 아니다)으로 시작한 소셜네트워크였지만 이제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이 점차 내 실명의 세계로 전환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어쩌면 페이스북이 나에게 '도대체 갑자기 왜?' 프로필을 제한한 게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나의 삶 중 이미 너무 많은 부분이 내가 '가상의 나' 세계와 동화해버린 것이다. 이제 그것을 완벽하게 제외한 채로는 살 수 없는 시대가 온 것이다. 내가 사는 사회 자체가 그렇게 변해버렸으므로.
이제 우리는 은행에 가지 않고도 전화기 하나만으로도 누군가에게 최대 5억이라는 돈을 보낼 수 있다.
인증을 받은 기관을 통해 보내온 전자계약서에 싸인하면 계약이 체결된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점점 익명의 세계를 잃어갈 수밖에 없다. 우리의 세계가 온라인으로 더 많이 편입되면 편입될수록 더 집요하게 본인임을 증명하라고 요구받을 것이므로. 익명을 원하는 사람들은 이제 온라인에도 똑같이 만들어진 더 어두운 곳으로 숨어들어갈 것이다.
페이스북 고객센터(?)에 내 하나의 계정을 삭제하고 싶다고 문의해두었다.
아마도 그들은 앞으로도 페이스북이라는 온라인 세계에 발이라도 붙이고 싶으면 나머지 하나의 계정이나마 이제 본명으로 전환해서 유지하라고 종용하겠지. 그 사회적 연결망을 끊어버릴 생각은 없기에 이번에는 그들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을 것 같다. 아무리 그래도 내 이름은 영어 스펠링으로 적어야겠다. 나를 내 영어 이름으로만 20년 넘게 알아왔던 친구들은 조금 어리둥절하겠지만 적어도 어떻게 발음하는지 읽을 수는 있어야 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