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 || 생각

여행의 이유_ 달라도 조화로운 세상을 위해

그간 내가 족적을 남긴 곳들

난생 처음으로 아빠 손을 잡고 탑승한 비행기 위에서 바라보는 하늘의 황홀한 모습에 홀딱 반한 다음부터는 시간의 틈과 통장 잔고만 있으면 어디든 떠나고 싶어 안달이 나곤 했다.

초등학교 방학 때 문화 교류로 들락거리기 시작한 일본은 홋카이도를 제외하고 구석구석 다녀봤고, 호주와 미국에서는 일하면서 몇 개월 동안 그곳 사람들의 삶에 함께 스며들어 지내기도 하고.... 너무 좋아하는 유럽은 세상에서 가장 살고 싶은 지역 중에 하나라서 만약 다음 생이란 게 존재한다면 유럽 부호의 애묘로 태어나고 싶을 정도다. 첫사랑이 중국 여자랑 결혼하는 바람에 "싫어!"라고 목놓아 외쳤던 중국이건만 어쩐 일인지 중국차tea의 바다에 풍덩 빠지는 바람에 호시탐탐 다시 그곳의 문화를 탐방할 날만을 기다리고 있기도 해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란 걸 뼈로 느끼곤 한다.

회사와 집만 오가는 걸 못 견디고 7개월 동안 떠났던 적도 있다. 당시의 나는 4개월 동안 아랍 국가들을 떠돌며 달라도 너무 다른 그들 삶의 방식과 문화에 매료되고 말았다. 그러다가 시리아에서 면역 시스템이 무너지는 걸 체험하고 죽더라도 이곳은 아니라 생각하며 스위스로 향했다. 제시간에 출발한 적 없는 기차와 버스, 부족한 선택지, 상인과의 흥정에 지쳤다 생각했건만 1분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스위스의 기차 시스템, 눈깔 튀어나오게 모든 것이 비쌌지만 어디에서도 흥정하지 않고 묵묵히 정해진 가격을 지불하는 모습, 무엇보다 눈이 뱅글뱅글 돌아가는 수많은 선택지 속에서 헤매는 나의 모습에 웃음만 났던 기억. 분명한 건 내가 떠나온 대한민국 또한 이와 다르지 않은 곳이라는 것이었고 나는 잠시 압도 당한 기분으로 퇴근길 러시아워의 인파로 분주한 취리히의 기차역에서 혼자 멍하니 서서 생각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분주하게 어디론가 향하는 수많은 저 사람들 중에 과연 제가 봤던 다른 세상, 저들이라면 비행기에 몸을 싣고 두 시간 내로 도착할 수 있는 그쪽 세상이 이곳과 그토록 다르다는 걸 몸으로 체험해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만약 사람들이 미디어에서 비춰주는 테러리스트 집단의 종교가 단지 이단이자 파벌의 하나라는 것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선한 웃음을 짓고 우리처럼 평범한 친절을 배푸는 사람들인지 안다면 이 세상은 좀 더 평화롭지 않을까. 여행이라는 자발적인 떠남을 통해서 자신이 속한 문화와는 다르지만 결국 똑같이 먹고 자고 싸는 게 삶의 주요한 일인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적어도 그들을 맹목적으로 무서워하는 일은 없지 않을까.

그곳이 어디이든 지질이 복도 없어 나쁜 추억만 가지고 돌아오지 않는 이상, 한 번이라도 현지 사람들의 따스함을 느끼고 돌아온 사람이라면 그 나라에 대한 호감이 형성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나라를 보고 체험하여 즐거운 추억을 쌓기를 바란다. 그만큼 더 세상은 살기 좋은 곳이 되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스위스에서 한 달을 지내며 면역력과 내가 속한 문명(?)의 감각을 회복하자마자 한 일은 라마단을 보내기 위해 모로코로 돌아간 일이었다. 나는 모험을 좋아하고 현지의 향신료가 듬뿍 들어간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다시 그간 내가 거친 시리아도 요르단도 이집트토 튀니지도 아닌 모로코를 택한 건 내가 이미 체험했던 모로코가 너무나도 좋았기 때문이었다. 모험을 좋아하나 익숙함 또한 너무나 좋아해서 도쿄, 암스테르담, 싱가포르 같은 곳에서는 1개월이고 3개월이고 산책이나 하며 머무르는 걸 좋아하기도 하기에.

참 많이 다녔다고 생각했는데 지도에는 내가 아직 가지 않은 곳이 훨씬 많다. 낯선 타국이지만 이미 거처간 경험을 기반으로 금세 편안하고 익숙해지는 것이 좋아 돌아가 더 자세히, 더 깊숙이 들여다보는 일이 왕왕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앞으로도 내가 가 본 곳들의 아름다움과 다양한 즐거움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지금까지 간 적 없는 새로운 곳에도 더 열심히 다녀와 다른 이들에게 떠나라고 부채질할 생각이다.

그것만이 이 세상이 더 좋은 곳이 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임을 믿기 때문이자 그것이 내가 여행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