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메테르는 사실 굉장히 중요한 위치에 있는 신이었다.
왜냐면 일단 인류에게 농경기술을 가르쳐줬다. 즉, 자기 먹고 살 기술을 전파해준 고마운 존재라는 것. 그리고 대지와 곡식과 추수의 여신이기도 하다. 이 정도면 농경사회에서 그녀의 위치가 절대적일 수밖에. 곡식이 여물지 않아 추수할 수 없다는 건 곧 굶주림이 찾아온다는 뜻 아니던가. 그게 과하면 죽음까지도. 따라서 굉장히 극진하게 제의를 올렸던 신 중 하나다.
가이아와 비교되기도 하지만 가이아는 우주 만물의 근원인 여신이고 데메테르는 우리가 일구어 농작물이 자랄 수 있게 하고 식물이 자라게 하는 대지의 생명력을 관장하는 여신 정도로 보면 되겠다. 어머니인 레아의 역할을 그녀가 물려받았다고 보는 것이 더 타탕하다.
데메테르 역시 올림푸스 12신 이야기가 정착하기 전부터 숭배받는 여신이었으나 점차 역할이 축소된 경우 중에 하나다.
그녀를 상징하는 것은 밀, 빵, 불, 풍요의 뿔이다.
그리스 로마 시절의 여인인데 위의 상징을 들고 있는 그림이나 조각상을 본다면 아하, 데메테르구나! 하시면 된다는 말씀.
제우스와의 사이에 페르세포네가 있고, 데메테르가 첫눈에 반한 인간 청년 이아시온과의 사이에는 풍요의 신 플루토스가 있고, 포세이돈과 말로 변신했을 때 낳은 신마(神馬) 아레이온도 있다.
이아시온과의 이야기가 꽤 재미있는데 이 둘은 이아시온 누이의 결혼식에서 만나 첫눈에 반했다. 그리고 세 번이나 갈아둔 밭에서 사랑을 나누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제우스가 질투에 눈이 멀어 벼락을 던져 이아시온을 죽였다는 이야기와 불사의 몸인 데메테르가 죽음의 숙명을 지고 태어난 인간 이아시온이 늙고 늙어 호호할아버지가 되는 모습을 보며 슬퍼했다는 이야기 두 가지 버전이 전한다.
하지만 역시 무엇보다 데메테르를 여전히 중요한 신의 위치로 많이 다루게 하는 것은 딸 페르세포네 납치 사건 때문이다.
납치라니, 이게 무슨 소리인고 하니....
제우스와의 사이에 낳은 딸 페르세포네는 참으로 어여쁜 아이였다. 어느 날 숲에서 오케아노스의 딸과 놀다가 예쁜 수선화가 핀 것을 보고 다가갔다가 갑자기 지하에서 올라온 삼촌 하데스에게 납치되어 하계로 내려갔다.
사실 하데스는 조카인 페르세포네에게 마음이 있었는데(그 시절에는 삼촌과 조카가 결혼하는 일이 꽤 흔했다 함) 누이인 데메테르가 반대할 것이 뻔해서 동생인 제우스를 들들 볶아 이 납치 사건의 각본을 짜낸 것.
데메테르는 9일 동안 밥도 한 술 안 먹고 물도 한 모금 안 마시며 딸을 찾아다녔다. 열흘째 되는 날 목격자를 찾았고 사건의 상황을 알게 된다. 너무나도 상심하고 좌절한 데메테르는 칩거하며 슬퍼할 뿐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땅의 곡식과 식물들은 메말라갔고 굶어 죽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당연히 신들에게 지내는 제사도 멈추게 됐다. 이러다 큰일나겠다 싶은 걸 그제야 깨달은 제우스가 하데스에게 어서 페르세포네를 엄마에게 돌려보내라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하계의 음식을 먹은 존재는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나는 법칙을 활용해서 페르세포네에게 석류 몇 알을 먹게 한 것이다.
땅은 계속 황폐해져가고 하데스는 이제 자기 마누라가 됐으니 절대 못 보낸다 하고....결국 제우스가 내린 결론은 페르세포네가 왔다 갔다 하게 하자였다. 밀을 심는 10월 초에는 지상으로 올라와 엄마인 데메테르와 살다가 수확이 끝나는 6월 초에는 다시 하계로 내려가 남편 하데스와 살게 된 것. 그래서 지상은 7, 8, 9월에 그렇게 혹독하게 덥고 건조한 시간이 찾아오게 된 것이라고.
물론 이것은 지중해의 이야기긴 하다. 우리나라는 그때 비도 많이 오고 습하지 않던가.....물론 혹독하게 더운 건 똑같아지긴 했지만.
이 신화의 요점은 이 사건으로 인해 생명의 순환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계속 풍요롭게 아무 걱정 없이 살다가 계절이 나뉘고 절기가 생겨났다는 것.
다음 이 시간에는 까탈스럽기로 유명했던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to be continued......